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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견(徐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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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대
고려 말
활동분야
문신
본 관
이천(利川)
여와(麗窩)
대표관직
사헌장령(司憲掌令)

고려말의 문신으로 이천 사람이다. 공양왕 3년(1391) 사헌장령(司憲掌令)이 되었으며, 다음해에는 성헌(省憲)·김진양(金震陽)·이확(李擴), 그리고 다른 여러 간관(諫官)들과 함께 조준(趙俊)·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윤소종(尹紹宗) 등을 탄핵하였다. 그러나 곧 정몽주(鄭夢周)가 피살되고 이성계(李成桂)와 조준·정도전이 실권을 장악하자 김진양(金震陽) 등과 함께 유배되었다. 그 해에 공양왕이 원주(原州)로 추방되고 고려가 멸망하자 서견은 금양(禁養)에 살면서 북녘을 향하여 앉는 일이 없었으며, 종신토록 한양성(漢陽城)을 마주하지 않았다. 간관들이 서견은 혼란을 꾀하는 자라 하여 처벌을 주장함에, 태종이 말하기를 "서견은 고려의 신하로서 고국을 잊지 않고 있으니, 이는 백이(伯夷)·숙제(叔齊)와 같은 무리인데, 어찌 죄를 내리겠는가." 하고 불문에 붙이었다. 나라가 망하고 왕씨(王氏)의 대통이 끊어졌는데도 끝까지 마음을 고치지 않았으니 그 충성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금천(衿川)의 번당(樊  : 현 서울성남고등학교 자리)에 서견의 묘가 있었는데 선조 때에 재상 윤근수(尹根壽)가 상소하여 충신의 묘로 봉해졌으며, 효종 9년(1658)에 사당을 세워 강태사(姜太師 : 강감찬)·이상국(李相國 : 이원익)과 함께 치제(致祭)케 하고, 삼현사(三賢祠)라 이름하였으니 《삼현사기 三賢祠記》에 이러한 기록이 남아 있다. 1938년까지 성남고교에 있었다가 의왕읍 포일리 산 82로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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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업데이트
2024년 07월 16일